고려(918~1392)는 약 500년간 독자적인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국가를 지탱하고 지배층의 삶을 풍요롭게 했던 수많은 민초, 즉 일반 백성들의 고단한 삶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바로 세금 제도(稅金制度)였습니다. 토지에서 생산되는 곡물과 노동력, 그리고 각 지역의 특산품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은 국가의 요구에 응하며 끊임없이 짐을 져야 했습니다.
고려의 세금 제도는 건국 초부터 안정적인 국가 운영을 위해 체계화되었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그 복잡성과 부담은 점차 가중되었습니다. 특히 무신정변 이후의 혼란기와 몽골의 침략이라는 국가적 위기는 백성들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을 안겨주었죠. 이 글에서는 고려 시대 세금 제도가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백성들이 짊어졌던 세금의 종류와 그 부담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세금 제도가 민중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1. 국가 운영의 근간: 고려 세금 제도의 기본 원칙
고려는 기본적으로 농업이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였습니다. 따라서 토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농민의 노동력이 국가 재정의 핵심을 이루었습니다.
- 토지 중심의 세수: 국가의 주된 수입원은 토지에 부과되는 세금(전세)이었습니다. 고려는 국가가 모든 토지를 소유하고 관료들에게 수조권(수확량의 일부를 세금으로 거둘 권리)을 부여하는 전시과(田柴科) 제도를 운영했습니다. 백성들은 경작하는 토지에 대한 세금을 국가나 수조권자에게 납부했습니다.
- 현물 납부 원칙: 대부분의 세금은 현물, 즉 곡물(주로 쌀)이나 포목(베, 비단), 그리고 각 지역의 특산물 형태로 납부되었습니다. 이는 화폐 경제가 미발달했던 당시 사회의 특징을 반영합니다.
- 백성 구휼과 조세: 고려 왕조는 유교적 애민(愛民) 사상과 불교적 자비 사상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고 질병이나 재난으로부터 구제하는 것을 국가의 중요한 책무로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휼 정책과 별개로 세금은 백성에게 꾸준히 부과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본 원칙 위에 고려의 세금 제도는 시대별로 변화하며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됩니다.
2. 고려 시대 백성들이 짊어진 세금의 종류: 삼세(三稅)와 잡세
고려 시대 백성들이 국가에 납부해야 했던 세금은 크게 세 가지, 즉 전세(田稅), 공물(貢物), 역(役)으로 나뉘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명목의 잡세와 부가적인 부담이 존재했습니다.
2.1. 전세(田稅): 땅에서 나오는 고혈(膏血)
전세는 경작하는 토지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국가 재정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 부과 기준: 토지의 비옥도(비척 등급)와 수확량에 따라 차등을 두어 부과되었습니다.
- 납부 방식: 주로 수확량의 1/10 정도를 국가에 납부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실제로는 1/4까지도 부과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곡물(쌀, 보리 등) 형태로 납부했습니다.
- 부담의 현실:
- 수확량 변동: 풍년과 흉년에 따라 수확량이 크게 변동했지만, 납부해야 할 세금은 크게 줄지 않아 흉년에는 백성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 중간 수탈: 국가에 납부하는 공식적인 세금 외에도, 토지를 소유한 귀족이나 사원, 그리고 지방의 향리(鄕吏)들이 자신들의 몫을 챙기거나 불법적으로 더 많은 소작료나 세금을 거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백성들에게 이중 삼중의 부담이 되었습니다.
- 토지 소유의 불안정: 무신정권기에는 무신들이 대규모로 토지를 겸병(兼幷)하면서 농민들이 자신의 토지를 잃고 소작농으로 전락하여 더욱 가혹한 소작료를 부담해야 했습니다.
2.2. 공물(貢物): 고향을 떠나는 고통스러운 특산품
공물은 각 가호(家戶, 집집마다)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주로 각 지역의 특산물을 현물로 납부했습니다.
- 부과 기준: 가호 단위로 부과되었으며, 지역별로 생산되는 특산품(예: 종이, 먹, 꿀, 약재, 직물, 해산물 등)을 정해진 양만큼 납부했습니다.
- 납부 방식: 현물을 직접 납부하거나, 특산품을 생산하여 바쳤습니다.
- 부담의 현실:
- 운송의 어려움: 납부해야 할 특산품은 생산지에서 수도 개경이나 지정된 관청까지 운반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운송비와 노동력이 소모되었습니다. 먼 거리의 운송은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었습니다.
- 방납(防納)의 폐단: 공물을 직접 납부하기 어려운 경우, 일부 중간 상인이나 지방 관리(향리)들이 대신 납부해주고 폭리를 취하는 '방납'이라는 폐단이 만연했습니다. 이들은 정해진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요구하여 백성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 무리한 생산 강요: 특정 특산품이 부족하거나 수요가 늘면, 해당 지역 백성들은 과도하게 생산량을 늘리도록 강요받아 고통받았습니다.
2.3. 역(役): 몸으로 때우는 고된 의무
역은 남성들에게 부과되는 노동력 제공의 의무로, 군역(軍役)과 요역(徭役)으로 나뉘었습니다.
- 부과 기준: 일정 연령 이상의 양인 남성에게 부과되었습니다.
- 군역(軍役): 국가의 방위를 위한 군사적 의무입니다. 정기적인 군사 훈련에 참여하고, 비상시에는 전투에 동원되었습니다.
- 요역(徭役):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대규모 토목 공사나 건축 사업에 동원되는 강제 노동입니다. 성벽 축조, 도로 및 교량 건설, 궁궐이나 관청 건축, 재해 복구 등에 백성들의 노동력이 징발되었습니다.
- 부담의 현실:
- 농사 중단: 요역이나 군역에 동원되면 백성들은 자신의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어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농번기에 동원되면 한 해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장기 동원과 사망: 요역은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고,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병에 걸리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 대립(代立)의 폐단: 요역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돈을 주고 대신 보내는 '대립'이 성행했는데, 이는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또 다른 착취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2.4. 기타 세금 및 잡세: 끝없는 징수의 고통
위 세 가지 주요 세금 외에도 다양한 명목의 잡세가 백성들에게 부과되었습니다.
- 진공(進貢): 왕실이나 고위 관료에게 바치는 비정기적인 선물이나 공물.
- 잡세: 특정 지역의 특수 상황에 따라 부과되는 임시적인 세금.
- 과도한 지대(地代) 및 신공(身貢): 귀족이나 사원 소유의 토지에서 농사짓는 소작농과 외거노비는 국가 세금 외에 지대나 신공을 납부해야 했는데, 이 또한 큰 부담이었습니다.
3. 세금 제도의 문제점과 백성의 고통 심화
고려의 세금 제도는 그 자체로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었지만, 시대가 흐를수록 그 문제점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 중간 수탈의 만연: 국가가 정한 공식적인 세금 외에, 지방관, 향리, 토지 소유자(귀족, 사원), 군인 등 다양한 중간 수탈 세력이 백성들의 재산을 불법적으로 강탈했습니다. 이는 백성들이 실제 부담하는 세금이 공식적인 액수를 훨씬 뛰어넘었음을 의미합니다.
- 부정부패의 심화: 세금 징수 과정에서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했습니다. 뇌물 수수, 조세 장부 조작, 허위 보고 등이 비일비재했습니다.
- 전시과의 문란: 고려 후기에는 전시과 제도가 문란해지면서 토지 소유가 복잡해지고, 이는 곧 세금 징수 과정의 혼란과 불법적인 토지 겸병으로 이어졌습니다.
- 잦은 재난과 전쟁의 영향: 흉년,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와 몽골 침략, 홍건적, 왜구 침입 등 잦은 전쟁은 백성들의 생산 기반을 파괴하고, 세금 납부 능력을 급격히 저하시켰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전쟁 비용이나 복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오히려 세금 부담을 늘리는 경우가 많아 백성들의 고통을 가중시켰습니다.
4. 세금 부담이 민중의 삶에 미친 영향: 나락으로 떨어진 생존
과도한 세금 부담은 고려 민중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 극심한 빈곤과 기아: 세금을 제때 납부하지 못하면 토지를 빼앗기거나 노비로 전락했습니다. 흉년에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백성이 속출했습니다.
- 토지 이탈 및 유랑: 세금과 부역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은 자신의 토지를 버리고 유랑민이 되거나 산속으로 도망쳐 도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국가의 생산 기반과 재정을 더욱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했습니다.
- 노비화의 심화: 빚을 갚지 못하거나 극심한 빈곤으로 인해 스스로를 노비로 팔아넘기거나, 자녀를 노비로 파는 비극적인 사례도 많았습니다.
- 민란(民亂)의 주요 원인: 과도한 세금과 수탈에 대한 민중의 불만과 분노는 결국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인 민란으로 폭발했습니다. 망이·망소이의 난, 만적의 난, 김사미·효심의 난 등 고려 무신정권기에 발생한 수많은 민란의 주요 배경에는 항상 백성들의 과도한 세금 부담과 수탈에 대한 저항이 있었습니다. 이는 민중들이 더 이상 억압을 참지 못하고 새로운 세상을 갈망했음을 보여줍니다.
- 사회 혼란 가중: 세금 제도의 문란과 백성들의 피폐한 삶은 사회 질서를 혼란시키고, 국가의 통치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요인이 되었습니다.
5. 국가의 구휼 노력과 한계: 고통 속의 작은 위안
고려 왕조도 백성들의 고통을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았습니다. 흉년이나 재난 시에는 일시적으로 세금을 감면해주거나, 구휼 정책을 펼쳤습니다.
- 구휼 제도: 의창(義倉), 상평창(常平倉) 등 비상시에 대비해 곡식을 비축해두고 빈민에게 대여해주거나 나누어주는 기관을 운영했습니다.
- 제위보(濟危寶), 혜민국(惠民局),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질병 치료와 빈민 구제를 위한 의료 기관 및 복지 시설을 설치하여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려 노력했습니다.
- 감세(減稅) 및 면역(免役): 흉년이나 재해가 발생하면 일시적으로 세금을 감면하거나 요역을 면제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의 노력은 백성들의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고통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구휼 제도가 부족하거나, 중앙 정부의 지시가 지방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중간에서 착복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세금 제도의 근본적인 모순과 지배층의 탐욕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움직인 세금, 천년의 흔적
고려 시대의 세금 제도는 국가의 번영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였지만, 동시에 대다수 민중의 삶을 짓누르는 무거운 굴레였습니다. 토지에 부과되는 전세, 가호에 부과되는 공물, 그리고 육체노동을 요구하는 역이라는 삼세(三稅)는 기본 부담이었고, 여기에 불법적인 중간 수탈과 잡세, 그리고 잦은 재난과 전쟁으로 인한 가중된 부담은 민초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과도한 세금 부담은 백성들의 빈곤을 심화시키고, 토지 이탈과 노비화를 촉진했으며, 결국 전국 각지에서 폭발한 민란의 주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민중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봉기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었고, 이는 고려 사회의 변화를 촉진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중요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천 년의 시간을 넘어, 고려 시대의 세금 제도는 우리에게 역사의 엄중함과 함께, 지배층의 책임, 경제적 정의, 그리고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준엄한 교훈을 일깨워 줍니다. 고려의 화려한 문화 유산 뒤편에 숨겨진 민초들의 피와 땀, 그리고 그들이 짊어졌던 세금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며, 진정한 사회 정의와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되새기게 합니다.